[43편] 第七章 생사투(生死鬪) 之 암중인물(暗中人物), 생사투(生死鬪)

암중인물(暗中人物)

 

“비무대 복원 때문에 대회가 하루 지체된 점 사과드립니다.

 하루를 기다리신 만큼 오늘은 더욱 흥미롭게 관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차례, 저패와 맹주끼리의 비무입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쪽지를 건넸고, 이를 살펴본 손영태가 군중들에게 알렸다. 

“방금 당맹연합으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저패(底牌, hidden card)를 쓰겠다는군요. 과연 누가 나올까요?”

주위를 둘러보던 손영태는 물론 모든 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무 판정단석에 앉아 있던 동창의 고문이자 무림맹 수석장로인 사불후가 비무대로 올라온 때문이었다. 

“아, 아니… 사 장로께서?”

“왜 그러시오? 나는 안 된다는 법이 있소?”

“그, 그건 아니지만…….”

사불후! 칠절대군(七絶大君)이라 불리며 무림맹의 무공까지 창안했다는 천재가 아닌가. 과연 그에게 대적할 만한 인물이 누가 있으랴.

그때 비무대 위로 올라온 인물이 있었다. 봉두난발에 허름한 복색의 늙수그레한 사내였다. 

“의림맹 대표신가요? 뉘, 뉘신지……?”

“내 이름은 표돌이오.”

“표, 표돌(表突, Fedor)-! 그, 그러면 투, 투왕-?”

무림의 전설 투왕이 비무대에 오르다니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손영태는 설상가상이란 별호가 무색하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 투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듣고는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뭘 그리 놀라? 저 칠절대군이란 놈은 옛날에 검왕이라고 불리던 놈인데…….”

“에엣-! 저, 정말요? 거, 검왕 사부루(史富壘, Sabre)란 말씀입니까?” 

사불후가 사부루였다니… 게다가 무림의 전설인 검왕과 투왕이 동시에 나타나다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손영태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비무 시작을 알렸다.  

“양측 모두 저패를 사용했습니다.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강호의 전설끼리 겨루는 미증유(未曾有)의 대결! 투왕 표돌 대 검왕 사부루의 비무입니다.”

 

“흥! 웬일인지 네가 검을 다 들고 있구나.”

검왕이 투왕이 든 검을 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그가 알기로는 투왕이 무기를 쓴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더군. 더구나 옛 친구가 검왕이란 별호를 가졌으니 그에 맞게 상대해 줘야지.”

“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너처럼 무식한 녀석은 특히-!”

검왕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리에 찬 칼집에서 검이 저절로 빠져나와 그의 손에 잡혔다. 

“우와-!”

절정에 이른 능공섭물(凌空攝物)에 중인들이 탄성을 질렀다. 

검왕은 손에 든 칼을 가볍게 던져 올렸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칼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 스스로 방향으로 바꾸더니 투왕에게로 날아갔다. 

화경(化境)에 이른 공력으로도 시전하기 어렵다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이었다. 

그러자 투왕도 칼을 뽑아 허공으로 던졌고, 그의 검 역시 생명이 있는 것처럼 검왕의 칼을 향해 맞부딪쳐 갔다. 

채챙-!

허공에서 부딪친 두 자루의 검은 반탄력으로 뒤로 날아갔다가 다시 방향으로 바꾸더니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두 자루의 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고 있는 듯 현란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했다.  

사람이 아닌 검끼리 벌이는 신기막측한 대결에 군중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대체 얼마만큼의 수련을 해야 저런 마술과도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검왕의 칼이 날카롭고 표홀한 공격을 하자 투왕은 부드러우면서도 육중한 힘이 실린 수법으로 이를 막아내며 역공을 했다. 

투왕은 슬쩍 이를 걷어내며 강맹한 힘으로 검왕 칼의 검신(劍身)을 내리쳤다. 검왕은 칼을 비스듬히 세워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투왕에게 검을 날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투왕의 칼 역시 자신을 공격해 오는 바람에 검왕은 황급히 자신의 칼을 회수하여 막아내야만 했다. 

최상승절기 이기어검!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왕이라는 별호가 붙은 만큼 초식이 따로 없었다. 매서운 화산검, 유연한 무당검, 강맹한 소림검, 쾌속한 남해검 등 온갖 절초가 쏟아져 나왔고, 변화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비등한 듯 보였던 이기어검의 대결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우열이 드러났다. 

검왕의 칼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회전 반경도 커졌지만, 투왕의 검은 처음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변화도 신속했다. 

지상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굳건한 마보세로 서서 연신 양손을 휘둘러 검을 조종하는 검왕은 전신이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투왕은 아예 앉은 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 손 만을 움직이고 있었다. 

채채채채챙-!

돌연 투왕의 검이 속도를 올려 검왕의 칼을 몰아쳤고, 힘을 잃은 검왕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하로 겹친 두 개의 칼은 마치 남녀가 교합(交合)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투왕의 칼에 깔린 검왕의 칼은 마치 절정에 이른 여인처럼 검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검왕은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칼을 빼내려 했지만, 투왕의 칼이 위에서 누르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투왕은 어떻게 검왕을 이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검왕의 장기인 검을 사용한 대결에서. 

바로 장왕 막가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무 전날, 장왕은 투왕을 으슥한 산속으로 데려갔다.  

“무림맹 녀석들은 반드시 검왕을 내세울 거야. 그러니 자네가 상대해야 해. 기왕이면 녀석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검으로 상대하면 더욱 약이 오르겠지.”

“그냥 싸움이라면 몰라도… 검이라면 별로 자신이 없는걸.”

장왕이 건네는 달걀만한 돌을 받으며 투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걸 만든 거야. 돌 가운데 있는 파란 단추를 눌러봐.”

투왕이 파란 단추를 누르자 장왕이 들고 있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하늘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붉은 단추를 눌러.”

그의 말대로 하자 검은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정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파란 단추는 상하, 붉은 단추는 좌우로 움직이네. 노란 단추를 누르면 회전을 하지. 세 가지 단추를 적절히 사용하면 수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어. 공력도 거의 소모되지 않고.”

“허어, 그것 참 신기한걸. 대체 이게 뭔가?”

“리모곤(釐謀琨, remote controller), 생각하는[謀] 대로 다스리는[釐] 옥돌[琨]이야. 만드느라 시간 깨나 걸렸지. 사용법은 이 수책(手冊, manual)에 적혀 있으니 숙지하게나.”  

투왕은 하루 종일 연습한 결과, 이기어검과 비슷하게 손을 대지 않고 칼을 움직이게 되었고 비무에서 검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이기어검이 여지없이 무너지자 검왕은 노성(怒聲)을 터뜨렸다. 

“검이 없다고 너 같은 놈을 상대하지 못할 줄 아느냐? 오너라!”

“잠깐! 규칙을 정해야지.”

투왕이 일어서며 말했다. 

“주먹을 섞는 데 무슨 규칙 운운해?”

“아냐. 개이원(皆異園, K-1)과 유애후씨(維碍侯氏, UFC)는 규칙이 다르거든.”

“뭐? 게이… 왕 하고 우에… 씨?”

도무지 모를 소리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검왕은 투왕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체 그게 뭔데… 캑-!”

검왕 사부루는 말을 미처 맺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고 말았다. 투왕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얼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하필 그가 맞은 곳은 과거 투왕에게 맞아 주저앉은 콧등이었다. 

십여 년 가까이 그를 감추느라 특별제작한 문사건을 쓰다가 얼마 전 장차 며느리가 될 당요가 준 규소수지(硅藻樹脂, silicon)을 이용하여 간신히 모양을 되찾은 콧등은 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투왕 승-!”

손영태가 크게 외쳤지만, 이미 정신을 잃은 검왕에게 그의 음성이 들릴 리 만무했다. 

 

 

 

생사투(生死鬪)

 

새벽에 잠시 내리던 비가 그치자 산은 여름을 보내기 아쉬운 듯 마지막 푸르름을 발하고 있었다.  

비무 나흘째, 앞서 치러진 여덟 차례의 비무는 의림맹이 전승(全勝)을 거두었고, 이제 마지막 아홉 번째 승부만 남긴 상황. 

“마지막 비무입니다. 누가 나올지는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그야 당가의 가주대행 당요와 의림맹주인 척척박사 인수린이겠지.”

설상가상 손영태와 관중 가운데 입담 좋은 사내가 말을 주고받았다. 

“잘 아시는군요.”

“그런데 당요가 감독(甘毒)을 퍼뜨렸다는 게 정말이오? 또한 특수기공을 익히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삼았다는 것도?”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으니 본 비무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요는 늘 그렇듯 흑의를 입고 비무대에 올랐고, 인수린은 그와 대비되는 백의무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흑백도불공존(黑白道不共存)이라는 말처럼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할 것이었다. 과연 누가 승리의 미소를 떠올리는 주인공이 될 것인지?

당요의 눈에는 더없이 강한 증오의 빛이 서려 있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인수린은 수십 번도 죽었으리라.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 무림은 물론 상계까지 장악하여 강호일통(江湖一通)을  하려던 야망을 수포로 만든 사내. 게다가 정인의 목숨까지 빼앗은 인수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당요의 표정은 담담했고 눈빛은 서늘했다. 그녀 역시 무인이기에. 

언제 뽑아 들었는지 그녀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한 손에 네 자루씩 도합 여덟 자루인 단검.

 날이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아 맹독이 칠해져 있는 듯했다.  

그녀는 양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끼요오옷-!”

당요는 기성(奇聲)과 함께 마치 만세를 부르듯 두 손을 위로 뻗으며 허공으로 단검을 던졌다. 

여덟 자루의 단검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인수린을 향해서.

쉐에에에엑-!

만천화우(滿天花雨), 하늘 가득 꽃비가 내린다는 우아한 표현과는 달리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당가의 비전이었다. 

언뜻 빈 구석이 많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의 팔방을 점유하고 있었고, 각 단검들이 동시에 떨어져 내리기에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절정의 암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인수린의 손에 들린 금척이 황금빛을 뿌리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단검과 맞부딪쳤다.  

채채채채채채채챙-!

여덟 번의 금속성과 함께 튕겨진 단검들은 팔방으로 날아가더니, 비무대의 가장자리에 꽂혔다. 그것도 비무대를 정확히 팔등분한 위치에. 

놀라운 속도와 힘 조절로 혹시라도 쳐낸 칼이 날아가 관중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지금 대형이 사용한 초식이 무엇이죠?”

적정량의 질문에 투왕이 답했다. 

“팔방풍우(八方風雨)!”

“아니!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팔방풍우로 어떻게 만천화우를 막았지요?”

“초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쓰는 이에게 달린 거야. 제 아무리 많은 방향에서 공격한다고 해도 결국은 전후좌우와 상하 여섯 곳뿐. 더구나 지금처럼 땅을 딛고 있다면 아래는 방어할 필요가 없으니 다섯 방향만 막으면 되지.”

“측면에서 비스듬히 공격해오는 건요?”

“측면이란 전과 후의 연장선 사이에 있는 한 점일 뿐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무가당이 한 마디 했다. 

“하긴 일본의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도 벽을 등지면 정면과 좌우 세 곳만 방어하면 된다고 했어요.”

“맞다, 무엇이건 절정에 이르면 통하는 법이지.”

대화는 그들만이 하는 게 아니었다.

 비무대에 선 당요와 인수린도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공이 제법이로구나. 만천화우를 막아내다니!”

“이십 년 전 수이(首爾) 목멱산(木覓山) 인근의 마을을 습격하여 주민 모두를 몰살시킨 일이 있지?”

“하도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내가 살던 마을어른들은 흡사 목내이(木乃伊, mirra)처럼 흉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께서 남기신 임사전언 당(唐)․여(女)․조(兆)가 너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오늘까지 오로지 원수를 갚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살아왔다.”

“네 말이 맞는다고 하자.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던데, 너는 이십 년을 기다렸다니 쌍군자(雙君子)로구나. 어쨌거나 효자인 것은 분명하니 곱게 죽여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겠구나.”   

말을 마치자마자 인수린을 향해 달려드는 당요의 손에는 기러기 깃털 모양의 날렵한 안령도(雁翎刀)가 들려 있었다.

“자, 내 칼을 받고도 과연 그리 자신만만할 수 있는지 보자.”

말을 마치는 순간 당요는 몸을 날리며 인수린을 공격해 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하면서도 음험한지 마치 지옥에서 뛰쳐나온 아수라(阿修羅)가 날뛰는 것 같았다.     

“아니! 저것은 실전(失傳)되었다는 마교(魔敎)의 수라도법(修羅刀法)이 아닌가?”

투왕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주받은 무공이라는 마교 최강의 도법이 당요에 의해 다시 나타난 것이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휘이이이잉-!

과연 수라도법의 위력은 놀라웠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친 풍성(風聲)과  함께 초록빛 운무(雲霧)가 피어올랐고, 군중들은 섬뜩한 요기(妖氣)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인수린은 침착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비록 당요의 도가 시야를 가리는 초록빛 기류를 토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척 또한 태양처럼 밝은 금빛을  뿜어내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수라참룡(修羅斬龍)-!”

당요가 크게 외치며 백회(百匯)와 현기(玄機)를 공격해 오자 인수린은 인자결(引字訣)을 이용한 인인팔세의 측세(側勢)로 막았다. 

도와 척이 맞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당요의 도가 기묘한 변화를 보이며 인수린의 풍부혈(風府穴)을 베어 왔다. 이에 인수린은 슬쩍 고개를 숙여 피하며 후리 듯하는 책세(策勢)로 사나운 공격을 펼쳤다.   

자신의 공격이 쉽게 막힌 것은 물론 역습까지 당하자 당요는 절초인 수라혈겁(修羅血劫), 수라파천(修羅破天)을 연달아 펼쳐냈다. 그러나 인수린은 쓸어내리는 약세(掠勢), 새 부리로 쪼는 듯한 탁세(啄勢)를 조합하여 적절한 대응을 했다. 

“수라멸세(修羅滅世)-!”

당요가 십 성의 공력을 모아 최후의 절초를 펼쳤고, 인수린도 파도처럼 거센 책세(磔勢)로 맞받아쳤다.

펑-! 

비무대 중앙에서 격돌했던 두 사람이 갈라섰다. 

인수린은 멀쩡했으나 당요의 치맛자락이 길게 베어져 나풀거리고 있었다. 

수라도는 저주받은 무공이라 불릴 만큼 막강했지만, 인수린이 은수사에서 몽금척도를 보고 인인팔세를 완성했기에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내 상대로 부족함이 없구나. 좋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위이이잉-!

돌연 당요의 칼끝에서 뿜어져 나오던 초록 안개 같은 기운이 뭉치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했다.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한 장 가량의 초록빛 검강(劍罡)을 이루어낸 것이다.

하지만 인수린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두 척이 조금 넘는 금척에서 뿜어진 밝은 빛은 당뇨와 마찬가지로 긴 검강으로 화했다. 다만 금빛이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위이이이잉-!

허공에서 녹색과 금색의 검강끼리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파팟-!

거의 한 장 가까운 길이의 초록 검강과 금색 검강을 뻗어내며

 빛의 결정체로 화(化)한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성전(星戰, Star Wars)을 비무대 위로 옮겨 놓은 듯했다. 

어지러이 춤추는 빛의 싸움!

 녹광(綠光) 대 금광(金光)의 화려한 격돌은

 음과 양의 대립이자 정과 사의 쟁투(爭鬪)이런가.  

위위위위윙-! 

기의 정화(精華)인 검강은 응집(凝集) 상태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한편

 내재된 폭발력을 일시에 터뜨리기 위한 순간만을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 같은 모순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 내뱉는 절규(絶叫)와도 같은 울림에 이어

 귀에 거슬리는 탁음(濁音)이 휘몰아쳤다. 

촤촤촤촤촤촥-!

녹광과 금광이 헤집고 지나간 비무대 바닥의 청석은 두부처럼 갈라지며 깊은 골을 만들어냈고, 검강에 스친 두 사람의 옷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수린과 당요가 서로 합(合)을 주고받기를 십여 차례-!

퍼펑-! 챙강-!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폭음과 함께 당요의 안령도가 부르르 떨다가 부러지고 말았다.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녀의 공력을 칼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었다. 

그에 맞춰 인수린도 공력을 거두자 관중들의 눈을 어지럽히던 녹색과 금색의 빛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요는 손잡이만 남은 칼을 바닥에 버리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무기가 제법 쓸 만하구나. 그렇다면 이것도 받아 봐라-!”   

당요가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수많은 목숨을 앗은 극악한 사공(邪功) 흡당내나이법(吸糖大那移法)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보기에도 섬뜩한 초록빛으로 변했다. 왜 그녀가 녹안요희(綠眼妖姬)라고 불리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당요는 쏜살 같이 달려오며 오른손을 내뻗었고, 인수린도 그에 맞받아쳤다. 

퍼펑-!

당요의 손과 인수린의 손이 맞부딪쳤다.

 극강의 사공 흡당대나이법과 절정의 기공 금정육합기가 격돌한 것이다. 

당요는 기를 운용하여 인수린 체내의 당분 모두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혈당(血糖)을 급감(急減)시켜 쓰러지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쏴아아-!

당요의 옷이 터질 듯 부푼 반면, 인수린의 무복(武服)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흡당대나이법이 최고로 발현된 것이다. 

 

당이란 인체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정상인도 당이 부족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피로를 느끼게 된다. 

당뇨환자는 당을 세포에게 전하는 작용을 하는 인슐린이 부족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흡당내나이법은 우선 인체의 당을 흡수하여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나아가 원정(元精)까지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원기가 손상된 상대는 당연히 절명하게 되고,

 모습은 목내이(木乃伊, mummy)처럼 변하고 만다. 

당요의 흡당대나이법이 발현된 순간,

 인수린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의 기운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당요의 손은 대장어(大章鱼:  문어)의 흡반(吸盤)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처럼 선천적으로 반당(反糖) 체질인 인수린이 쉽게 쓰러질 리 없었다. 

무려 한 각(刻)이 넘도록 지속된 공력 대결.

 빼앗으려는 이와 지키려는 이의 목숨을 건 싸움에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당요의 눈은 더욱 진한 녹색을 띠어 갔고, 인수린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인수린은 금정육합기의 묘용에 힘입어 당(糖)을 이루는 토기(土氣)가 손실되더라도 화기(火氣)가 작용하여 급속히 보충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무한할 수는 없었다. 

당요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잔(盞)보다 많은 양을 담을 수는 없듯 인수린으로부터 흡수한 당이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었다.  

당요의 단전이 마치 임산부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을 무렵, 밀착된 손바닥을 통해 새로운 기운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통해 흘러 들어온 묘한 기운은 체내에 가득한 당과 부드럽게 결합했고, 당요는 생기가 충만해짐을 느꼈다.  

‘후훗-! 이제 당이 고갈되니 원정(元精)이 흘러들어오는군. 색다른 내공을 수련해서 그런지 기운도 독특하군. 신선해!’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당요는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며 공력이 급감(急減)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이건… 대, 대체 무슨 일이지?’

인수린으로부터 당요에게 흡입된 기운은 다름 아닌 이도소(胰岛素, insulin)였다. 

색후의 가르침으로 환정비술(還精秘術)을 터득한 인수린은

 체내의 하이몽(荷尔蒙, hormone)을 조절하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이도소 즉 인슐린의 작용은 음식을 통해 흡수한 당분을, 

 혈류[혈행]를 통해서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세포로 운반한 뒤에,

 세포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당뇨 환자는 인슐린이 원활히 분비되지 않으므로

 당이 세포에 들어가지 못하고 혈액 속을 떠도는 것이다. 

만약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어떻게 될까?

 인슐린은 혈액 내의 당을 세포로 계속 옮기고,

 세포는 넘쳐나는 당을 동물정분(动物淀枌: glykogen)으로 변화시켜 저장한다. 

그러면 다시 혈액 내의 당이 급격하게 떨어져 저혈당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으윽-!”

결국 당요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저혈당으로 인한 극심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공력을 풀자,

 갑자기 기가 역류(逆流)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인수린의 체내에서 빠져나와 당뇨의 몸에 쌓였던 당분과 인슐린이

 거꾸로 인수린에게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번 빠져나가기 시작한 기류(氣流)가 홍흡관작용(虹吸管作用, siphonage)을 일으키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인수린의 옷이 크게 부풀었고 당요의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지 옷의 변화로 그치지 않았다. 인수린의 몸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고, 당요는 급속히 살이 빠지고 있었다. 

다시 반 각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맞댄 채였다. 

인수린은 이백 근은 족히 될 듯한 뚱뚱한 몸이 되었고,

 당요는 뼈에 가죽만 씌운 듯 비쩍 마른 모습으로 변했다. 

쉬이이익-!

고무공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손을 떼며 쓰러졌다. 

엄청나게 비대해진 인수린은 중심을 잡지 못해서, 거의 뼈만 남다시피 앙상해진 당요는 급격한 혈당 감소까지 겹쳐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인수린의 몸은 공처럼 부풀어 있었다.

 얼굴도 배도 팔도 다리도 엄청나게 부풀어 마치 눈사람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반면 당요는 피골이 상접한 외에도 몰골이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마흔이 갓 넘은 나이임에도 얼굴은 팔십 대의 노파처럼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고, 군데군데 노반(老斑)이 생겨 있었다. 

몸에서 당분만이 아닌 원정(元精)까지 빠져 나간데다가

 무공을 속성으로 이루기 위해 과다복용한 수태로이두(首泰露以頭, steroid)와

 미모를 유지하고자 시술한 보독수(保篤水, botox)의 부작용이

 무리한 공력 운행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인수린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당요는 숨을 거둔 뒤였다.

 자신이 흡당내나이법을 완성하기 위해 목숨을 앗은 그들처럼 흉한 모습인 채로. 

너무도 놀라운 그리고 무서운 싸움에 진행을 맡은 손영태조차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의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비무대를 내려온 인수린을 살펴본 지박오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너 또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구나.

 온통 오염물질투성이인 극악한 당(糖)에 중독되고 말았어.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치료하자면 무척 힘들겠다.”

포이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의왕과 함께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당은 독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

 그러면서도 건강을 좀먹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차라리 강한 독이라면 단번에 해독시켜 줄 수도 있는데…….”

“아닙니다. 저는 원한을 갚았고 또한 강호의 악을 제거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제 몸은 제가 노력해서 고치면 되겠지요.”

“장하다. 과연 우리 칠왕의 제자로구나.

 네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극당비결(剋糖秘訣)을 줄 터이니

 부단히 연마하여 건강을 되찾도록 해라.”

“스승의 은혜에 감읍(感泣)할 뿐입니다.”

지박오가 건넨 책자를 펼쳐본 인수린이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아, 아니… 아, 아무 것도 없는 백지인데요?”

“바로 무자경(無字經)이니라.

 서유기의 삼장법사(三藏法師)가 천축에서 처음 얻은 것도 무자경이라 하지 않더냐?

 지고한 법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는 것을.”

“그, 그래도 이건 좀…….”

“그 책은 네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만큼 먹었는지,

 어떤 운동을 언제 얼마 동안 했는지, 

 어떤   약을  언제 몇 알을 먹었는지 등을

 빠짐없이 적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릇된 습관을 고친다면

 당뇨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 생활을 기록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 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울 것인 즉

 노래를 한 곡 가르쳐 주마. 힘에 부칠 때 이 노래를 부른다면 신명이 날 것이다.

 노래의 원제목은 극당위강지곡(剋糖爲康之曲)인데,

 보통 당뇨인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의

 ‘당인요자강(糖人要自强)’이라고도 불린다. 

내가 한 번 불러줄 터인 즉 잘 듣고 외우도록 해라.”

 

인생백세장우장(人生百歲長又長)   인생 백 세 길고도 길지만 

병약평생신고야(病弱平生辛苦也)   평생 병약하면 고생스러울 뿐.

백평광옥무소용(百坪廣屋無所用)   백 평 큰 집 소용없네.

반평아신재환중(半坪我身在患中)   반 평 내 몸은 진흙탕에 있으니.

 

질병기인악습관(疾病起因惡習慣)   질병은 나쁜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

금주금연행운동(禁酒禁煙行運動)   술 담배 끊고 운동을 하세.

건강월시재신중(健康钥匙在身中)   건강의 열쇠는 내 몸 속에 있으니

수신파나세아존(修身婆拿洗我尊)   스스로를 닦아 사바에 잡힌 나를 씻고

                                                         존귀한 나를 만드세.  

 

힘내라! 당뇨인~ ♥♥♥ 加油 ! 糖尿人♥♥♥ Let's GO ! Diabetics♥♥♥

 

 

 

 

 

암중인물(暗中人物)

 

“비무대 복원 때문에 대회가 하루 지체된 점 사과드립니다.

 하루를 기다리신 만큼 오늘은 더욱 흥미롭게 관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차례, 저패와 맹주끼리의 비무입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쪽지를 건넸고, 이를 살펴본 손영태가 군중들에게 알렸다. 

“방금 당맹연합으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저패(底牌, hidden card)를 쓰겠다는군요. 과연 누가 나올까요?”

주위를 둘러보던 손영태는 물론 모든 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무 판정단석에 앉아 있던 동창의 고문이자 무림맹 수석장로인 사불후가 비무대로 올라온 때문이었다. 

“아, 아니… 사 장로께서?”

“왜 그러시오? 나는 안 된다는 법이 있소?”

“그, 그건 아니지만…….”

사불후! 칠절대군(七絶大君)이라 불리며 무림맹의 무공까지 창안했다는 천재가 아닌가. 과연 그에게 대적할 만한 인물이 누가 있으랴.

그때 비무대 위로 올라온 인물이 있었다. 봉두난발에 허름한 복색의 늙수그레한 사내였다. 

“의림맹 대표신가요? 뉘, 뉘신지……?”

“내 이름은 표돌이오.”

“표, 표돌(表突, Fedor)-! 그, 그러면 투, 투왕-?”

무림의 전설 투왕이 비무대에 오르다니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손영태는 설상가상이란 별호가 무색하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 투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듣고는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뭘 그리 놀라? 저 칠절대군이란 놈은 옛날에 검왕이라고 불리던 놈인데…….”

“에엣-! 저, 정말요? 거, 검왕 사부루(史富壘, Sabre)란 말씀입니까?” 

사불후가 사부루였다니… 게다가 무림의 전설인 검왕과 투왕이 동시에 나타나다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손영태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비무 시작을 알렸다.  

“양측 모두 저패를 사용했습니다.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강호의 전설끼리 겨루는 미증유(未曾有)의 대결! 투왕 표돌 대 검왕 사부루의 비무입니다.”

 

“흥! 웬일인지 네가 검을 다 들고 있구나.”

검왕이 투왕이 든 검을 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그가 알기로는 투왕이 무기를 쓴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더군. 더구나 옛 친구가 검왕이란 별호를 가졌으니 그에 맞게 상대해 줘야지.”

“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너처럼 무식한 녀석은 특히-!”

검왕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리에 찬 칼집에서 검이 저절로 빠져나와 그의 손에 잡혔다. 

“우와-!”

절정에 이른 능공섭물(凌空攝物)에 중인들이 탄성을 질렀다. 

검왕은 손에 든 칼을 가볍게 던져 올렸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칼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 스스로 방향으로 바꾸더니 투왕에게로 날아갔다. 

화경(化境)에 이른 공력으로도 시전하기 어렵다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이었다. 

그러자 투왕도 칼을 뽑아 허공으로 던졌고, 그의 검 역시 생명이 있는 것처럼 검왕의 칼을 향해 맞부딪쳐 갔다. 

채챙-!

허공에서 부딪친 두 자루의 검은 반탄력으로 뒤로 날아갔다가 다시 방향으로 바꾸더니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두 자루의 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고 있는 듯 현란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했다.  

사람이 아닌 검끼리 벌이는 신기막측한 대결에 군중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대체 얼마만큼의 수련을 해야 저런 마술과도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검왕의 칼이 날카롭고 표홀한 공격을 하자 투왕은 부드러우면서도 육중한 힘이 실린 수법으로 이를 막아내며 역공을 했다. 

투왕은 슬쩍 이를 걷어내며 강맹한 힘으로 검왕 칼의 검신(劍身)을 내리쳤다. 검왕은 칼을 비스듬히 세워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투왕에게 검을 날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투왕의 칼 역시 자신을 공격해 오는 바람에 검왕은 황급히 자신의 칼을 회수하여 막아내야만 했다. 

최상승절기 이기어검!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왕이라는 별호가 붙은 만큼 초식이 따로 없었다. 매서운 화산검, 유연한 무당검, 강맹한 소림검, 쾌속한 남해검 등 온갖 절초가 쏟아져 나왔고, 변화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비등한 듯 보였던 이기어검의 대결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우열이 드러났다. 

검왕의 칼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회전 반경도 커졌지만, 투왕의 검은 처음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변화도 신속했다. 

지상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굳건한 마보세로 서서 연신 양손을 휘둘러 검을 조종하는 검왕은 전신이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투왕은 아예 앉은 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 손 만을 움직이고 있었다. 

채채채채챙-!

돌연 투왕의 검이 속도를 올려 검왕의 칼을 몰아쳤고, 힘을 잃은 검왕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하로 겹친 두 개의 칼은 마치 남녀가 교합(交合)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투왕의 칼에 깔린 검왕의 칼은 마치 절정에 이른 여인처럼 검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검왕은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칼을 빼내려 했지만, 투왕의 칼이 위에서 누르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투왕은 어떻게 검왕을 이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검왕의 장기인 검을 사용한 대결에서. 

바로 장왕 막가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무 전날, 장왕은 투왕을 으슥한 산속으로 데려갔다.  

“무림맹 녀석들은 반드시 검왕을 내세울 거야. 그러니 자네가 상대해야 해. 기왕이면 녀석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검으로 상대하면 더욱 약이 오르겠지.”

“그냥 싸움이라면 몰라도… 검이라면 별로 자신이 없는걸.”

장왕이 건네는 달걀만한 돌을 받으며 투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걸 만든 거야. 돌 가운데 있는 파란 단추를 눌러봐.”

투왕이 파란 단추를 누르자 장왕이 들고 있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하늘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붉은 단추를 눌러.”

그의 말대로 하자 검은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정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파란 단추는 상하, 붉은 단추는 좌우로 움직이네. 노란 단추를 누르면 회전을 하지. 세 가지 단추를 적절히 사용하면 수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어. 공력도 거의 소모되지 않고.”

“허어, 그것 참 신기한걸. 대체 이게 뭔가?”

“리모곤(釐謀琨, remote controller), 생각하는[謀] 대로 다스리는[釐] 옥돌[琨]이야. 만드느라 시간 깨나 걸렸지. 사용법은 이 수책(手冊, manual)에 적혀 있으니 숙지하게나.”  

투왕은 하루 종일 연습한 결과, 이기어검과 비슷하게 손을 대지 않고 칼을 움직이게 되었고 비무에서 검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이기어검이 여지없이 무너지자 검왕은 노성(怒聲)을 터뜨렸다. 

“검이 없다고 너 같은 놈을 상대하지 못할 줄 아느냐? 오너라!”

“잠깐! 규칙을 정해야지.”

투왕이 일어서며 말했다. 

“주먹을 섞는 데 무슨 규칙 운운해?”

“아냐. 개이원(皆異園, K-1)과 유애후씨(維碍侯氏, UFC)는 규칙이 다르거든.”

“뭐? 게이… 왕 하고 우에… 씨?”

도무지 모를 소리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검왕은 투왕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체 그게 뭔데… 캑-!”

검왕 사부루는 말을 미처 맺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고 말았다. 투왕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얼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하필 그가 맞은 곳은 과거 투왕에게 맞아 주저앉은 콧등이었다. 

십여 년 가까이 그를 감추느라 특별제작한 문사건을 쓰다가 얼마 전 장차 며느리가 될 당요가 준 규소수지(硅藻樹脂, silicon)을 이용하여 간신히 모양을 되찾은 콧등은 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투왕 승-!”

손영태가 크게 외쳤지만, 이미 정신을 잃은 검왕에게 그의 음성이 들릴 리 만무했다. 

 

 

 

생사투(生死鬪)

 

새벽에 잠시 내리던 비가 그치자 산은 여름을 보내기 아쉬운 듯 마지막 푸르름을 발하고 있었다.  

비무 나흘째, 앞서 치러진 여덟 차례의 비무는 의림맹이 전승(全勝)을 거두었고, 이제 마지막 아홉 번째 승부만 남긴 상황. 

“마지막 비무입니다. 누가 나올지는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그야 당가의 가주대행 당요와 의림맹주인 척척박사 인수린이겠지.”

설상가상 손영태와 관중 가운데 입담 좋은 사내가 말을 주고받았다. 

“잘 아시는군요.”

“그런데 당요가 감독(甘毒)을 퍼뜨렸다는 게 정말이오? 또한 특수기공을 익히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삼았다는 것도?”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으니 본 비무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요는 늘 그렇듯 흑의를 입고 비무대에 올랐고, 인수린은 그와 대비되는 백의무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흑백도불공존(黑白道不共存)이라는 말처럼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할 것이었다. 과연 누가 승리의 미소를 떠올리는 주인공이 될 것인지?

당요의 눈에는 더없이 강한 증오의 빛이 서려 있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인수린은 수십 번도 죽었으리라.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 무림은 물론 상계까지 장악하여 강호일통(江湖一通)을  하려던 야망을 수포로 만든 사내. 게다가 정인의 목숨까지 빼앗은 인수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당요의 표정은 담담했고 눈빛은 서늘했다. 그녀 역시 무인이기에. 

언제 뽑아 들었는지 그녀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한 손에 네 자루씩 도합 여덟 자루인 단검.

 날이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아 맹독이 칠해져 있는 듯했다.  

그녀는 양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끼요오옷-!”

당요는 기성(奇聲)과 함께 마치 만세를 부르듯 두 손을 위로 뻗으며 허공으로 단검을 던졌다. 

여덟 자루의 단검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인수린을 향해서.

쉐에에에엑-!

만천화우(滿天花雨), 하늘 가득 꽃비가 내린다는 우아한 표현과는 달리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당가의 비전이었다. 

언뜻 빈 구석이 많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의 팔방을 점유하고 있었고, 각 단검들이 동시에 떨어져 내리기에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절정의 암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인수린의 손에 들린 금척이 황금빛을 뿌리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단검과 맞부딪쳤다.  

채채채채채채채챙-!

여덟 번의 금속성과 함께 튕겨진 단검들은 팔방으로 날아가더니, 비무대의 가장자리에 꽂혔다. 그것도 비무대를 정확히 팔등분한 위치에. 

놀라운 속도와 힘 조절로 혹시라도 쳐낸 칼이 날아가 관중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지금 대형이 사용한 초식이 무엇이죠?”

적정량의 질문에 투왕이 답했다. 

“팔방풍우(八方風雨)!”

“아니!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팔방풍우로 어떻게 만천화우를 막았지요?”

“초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쓰는 이에게 달린 거야. 제 아무리 많은 방향에서 공격한다고 해도 결국은 전후좌우와 상하 여섯 곳뿐. 더구나 지금처럼 땅을 딛고 있다면 아래는 방어할 필요가 없으니 다섯 방향만 막으면 되지.”

“측면에서 비스듬히 공격해오는 건요?”

“측면이란 전과 후의 연장선 사이에 있는 한 점일 뿐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무가당이 한 마디 했다. 

“하긴 일본의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도 벽을 등지면 정면과 좌우 세 곳만 방어하면 된다고 했어요.”

“맞다, 무엇이건 절정에 이르면 통하는 법이지.”

대화는 그들만이 하는 게 아니었다.

 비무대에 선 당요와 인수린도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공이 제법이로구나. 만천화우를 막아내다니!”

“이십 년 전 수이(首爾) 목멱산(木覓山) 인근의 마을을 습격하여 주민 모두를 몰살시킨 일이 있지?”

“하도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내가 살던 마을어른들은 흡사 목내이(木乃伊, mirra)처럼 흉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께서 남기신 임사전언 당(唐)․여(女)․조(兆)가 너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오늘까지 오로지 원수를 갚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살아왔다.”

“네 말이 맞는다고 하자.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던데, 너는 이십 년을 기다렸다니 쌍군자(雙君子)로구나. 어쨌거나 효자인 것은 분명하니 곱게 죽여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겠구나.”   

말을 마치자마자 인수린을 향해 달려드는 당요의 손에는 기러기 깃털 모양의 날렵한 안령도(雁翎刀)가 들려 있었다.

“자, 내 칼을 받고도 과연 그리 자신만만할 수 있는지 보자.”

말을 마치는 순간 당요는 몸을 날리며 인수린을 공격해 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하면서도 음험한지 마치 지옥에서 뛰쳐나온 아수라(阿修羅)가 날뛰는 것 같았다.     

“아니! 저것은 실전(失傳)되었다는 마교(魔敎)의 수라도법(修羅刀法)이 아닌가?”

투왕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주받은 무공이라는 마교 최강의 도법이 당요에 의해 다시 나타난 것이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휘이이이잉-!

과연 수라도법의 위력은 놀라웠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친 풍성(風聲)과  함께 초록빛 운무(雲霧)가 피어올랐고, 군중들은 섬뜩한 요기(妖氣)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인수린은 침착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비록 당요의 도가 시야를 가리는 초록빛 기류를 토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척 또한 태양처럼 밝은 금빛을  뿜어내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수라참룡(修羅斬龍)-!”

당요가 크게 외치며 백회(百匯)와 현기(玄機)를 공격해 오자 인수린은 인자결(引字訣)을 이용한 인인팔세의 측세(側勢)로 막았다. 

도와 척이 맞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당요의 도가 기묘한 변화를 보이며 인수린의 풍부혈(風府穴)을 베어 왔다. 이에 인수린은 슬쩍 고개를 숙여 피하며 후리 듯하는 책세(策勢)로 사나운 공격을 펼쳤다.   

자신의 공격이 쉽게 막힌 것은 물론 역습까지 당하자 당요는 절초인 수라혈겁(修羅血劫), 수라파천(修羅破天)을 연달아 펼쳐냈다. 그러나 인수린은 쓸어내리는 약세(掠勢), 새 부리로 쪼는 듯한 탁세(啄勢)를 조합하여 적절한 대응을 했다. 

“수라멸세(修羅滅世)-!”

당요가 십 성의 공력을 모아 최후의 절초를 펼쳤고, 인수린도 파도처럼 거센 책세(磔勢)로 맞받아쳤다.

펑-! 

비무대 중앙에서 격돌했던 두 사람이 갈라섰다. 

인수린은 멀쩡했으나 당요의 치맛자락이 길게 베어져 나풀거리고 있었다. 

수라도는 저주받은 무공이라 불릴 만큼 막강했지만, 인수린이 은수사에서 몽금척도를 보고 인인팔세를 완성했기에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내 상대로 부족함이 없구나. 좋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위이이잉-!

돌연 당요의 칼끝에서 뿜어져 나오던 초록 안개 같은 기운이 뭉치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했다.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한 장 가량의 초록빛 검강(劍罡)을 이루어낸 것이다.

하지만 인수린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두 척이 조금 넘는 금척에서 뿜어진 밝은 빛은 당뇨와 마찬가지로 긴 검강으로 화했다. 다만 금빛이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위이이이잉-!

허공에서 녹색과 금색의 검강끼리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파팟-!

거의 한 장 가까운 길이의 초록 검강과 금색 검강을 뻗어내며

 빛의 결정체로 화(化)한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성전(星戰, Star Wars)을 비무대 위로 옮겨 놓은 듯했다. 

어지러이 춤추는 빛의 싸움!

 녹광(綠光) 대 금광(金光)의 화려한 격돌은

 음과 양의 대립이자 정과 사의 쟁투(爭鬪)이런가.  

위위위위윙-! 

기의 정화(精華)인 검강은 응집(凝集) 상태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한편

 내재된 폭발력을 일시에 터뜨리기 위한 순간만을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 같은 모순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 내뱉는 절규(絶叫)와도 같은 울림에 이어

 귀에 거슬리는 탁음(濁音)이 휘몰아쳤다. 

촤촤촤촤촤촥-!

녹광과 금광이 헤집고 지나간 비무대 바닥의 청석은 두부처럼 갈라지며 깊은 골을 만들어냈고, 검강에 스친 두 사람의 옷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수린과 당요가 서로 합(合)을 주고받기를 십여 차례-!

퍼펑-! 챙강-!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폭음과 함께 당요의 안령도가 부르르 떨다가 부러지고 말았다.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녀의 공력을 칼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었다. 

그에 맞춰 인수린도 공력을 거두자 관중들의 눈을 어지럽히던 녹색과 금색의 빛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요는 손잡이만 남은 칼을 바닥에 버리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무기가 제법 쓸 만하구나. 그렇다면 이것도 받아 봐라-!”   

당요가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수많은 목숨을 앗은 극악한 사공(邪功) 흡당내나이법(吸糖大那移法)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보기에도 섬뜩한 초록빛으로 변했다. 왜 그녀가 녹안요희(綠眼妖姬)라고 불리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당요는 쏜살 같이 달려오며 오른손을 내뻗었고, 인수린도 그에 맞받아쳤다. 

퍼펑-!

당요의 손과 인수린의 손이 맞부딪쳤다.

 극강의 사공 흡당대나이법과 절정의 기공 금정육합기가 격돌한 것이다. 

당요는 기를 운용하여 인수린 체내의 당분 모두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혈당(血糖)을 급감(急減)시켜 쓰러지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쏴아아-!

당요의 옷이 터질 듯 부푼 반면, 인수린의 무복(武服)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흡당대나이법이 최고로 발현된 것이다. 

 

당이란 인체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정상인도 당이 부족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피로를 느끼게 된다. 

당뇨환자는 당을 세포에게 전하는 작용을 하는 인슐린이 부족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흡당내나이법은 우선 인체의 당을 흡수하여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나아가 원정(元精)까지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원기가 손상된 상대는 당연히 절명하게 되고,

 모습은 목내이(木乃伊, mummy)처럼 변하고 만다. 

당요의 흡당대나이법이 발현된 순간,

 인수린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의 기운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당요의 손은 대장어(大章鱼:  문어)의 흡반(吸盤)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처럼 선천적으로 반당(反糖) 체질인 인수린이 쉽게 쓰러질 리 없었다. 

무려 한 각(刻)이 넘도록 지속된 공력 대결.

 빼앗으려는 이와 지키려는 이의 목숨을 건 싸움에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당요의 눈은 더욱 진한 녹색을 띠어 갔고, 인수린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인수린은 금정육합기의 묘용에 힘입어 당(糖)을 이루는 토기(土氣)가 손실되더라도 화기(火氣)가 작용하여 급속히 보충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무한할 수는 없었다. 

당요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잔(盞)보다 많은 양을 담을 수는 없듯 인수린으로부터 흡수한 당이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었다.  

당요의 단전이 마치 임산부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을 무렵, 밀착된 손바닥을 통해 새로운 기운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통해 흘러 들어온 묘한 기운은 체내에 가득한 당과 부드럽게 결합했고, 당요는 생기가 충만해짐을 느꼈다.  

‘후훗-! 이제 당이 고갈되니 원정(元精)이 흘러들어오는군. 색다른 내공을 수련해서 그런지 기운도 독특하군. 신선해!’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당요는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며 공력이 급감(急減)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이건… 대, 대체 무슨 일이지?’

인수린으로부터 당요에게 흡입된 기운은 다름 아닌 이도소(胰岛素, insulin)였다. 

색후의 가르침으로 환정비술(還精秘術)을 터득한 인수린은

 체내의 하이몽(荷尔蒙, hormone)을 조절하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이도소 즉 인슐린의 작용은 음식을 통해 흡수한 당분을,

 혈류[혈행]를 통해서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세포로 운반한 뒤에,

 세포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당뇨 환자는 인슐린이 원활히 분비되지 않으므로

 당이 세포에 들어가지 못하고 혈액 속을 떠도는 것이다. 

만약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어떻게 될까?

 인슐린은 혈액 내의 당을 세포로 계속 옮기고,

 세포는 넘쳐나는 당을 동물정분(动物淀枌: glykogen)으로 변화시켜 저장한다. 

그러면 다시 혈액 내의 당이 급격하게 떨어져 저혈당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으윽-!”

결국 당요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저혈당으로 인한 극심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공력을 풀자,

 갑자기 기가 역류(逆流)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인수린의 체내에서 빠져나와 당뇨의 몸에 쌓였던 당분과 인슐린이

 거꾸로 인수린에게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번 빠져나가기 시작한 기류(氣流)가 홍흡관작용(虹吸管作用, siphonage)을 일으키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인수린의 옷이 크게 부풀었고 당요의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지 옷의 변화로 그치지 않았다. 인수린의 몸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고, 당요는 급속히 살이 빠지고 있었다. 

다시 반 각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맞댄 채였다. 

인수린은 이백 근은 족히 될 듯한 뚱뚱한 몸이 되었고,

 당요는 뼈에 가죽만 씌운 듯 비쩍 마른 모습으로 변했다. 

쉬이이익-!

고무공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손을 떼며 쓰러졌다. 

엄청나게 비대해진 인수린은 중심을 잡지 못해서, 거의 뼈만 남다시피 앙상해진 당요는 급격한 혈당 감소까지 겹쳐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인수린의 몸은 공처럼 부풀어 있었다.

 얼굴도 배도 팔도 다리도 엄청나게 부풀어 마치 눈사람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반면 당요는 피골이 상접한 외에도 몰골이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마흔이 갓 넘은 나이임에도 얼굴은 팔십 대의 노파처럼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고, 군데군데 노반(老斑)이 생겨 있었다. 

몸에서 당분만이 아닌 원정(元精)까지 빠져 나간데다가

 무공을 속성으로 이루기 위해 과다복용한 수태로이두(首泰露以頭, steroid)와

 미모를 유지하고자 시술한 보독수(保篤水, botox)의 부작용이

 무리한 공력 운행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인수린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당요는 숨을 거둔 뒤였다.

 자신이 흡당내나이법을 완성하기 위해 목숨을 앗은 그들처럼 흉한 모습인 채로. 

너무도 놀라운 그리고 무서운 싸움에 진행을 맡은 손영태조차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의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비무대를 내려온 인수린을 살펴본 지박오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너 또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구나.

 온통 오염물질투성이인 극악한 당(糖)에 중독되고 말았어.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치료하자면 무척 힘들겠다.”

포이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의왕과 함께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당은 독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

 그러면서도 건강을 좀먹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차라리 강한 독이라면 단번에 해독시켜 줄 수도 있는데…….”

“아닙니다. 저는 원한을 갚았고 또한 강호의 악을 제거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제 몸은 제가 노력해서 고치면 되겠지요.”

“장하다. 과연 우리 칠왕의 제자로구나.

 네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극당비결(剋糖秘訣)을 줄 터이니

 부단히 연마하여 건강을 되찾도록 해라.”

“스승의 은혜에 감읍(感泣)할 뿐입니다.”

지박오가 건넨 책자를 펼쳐본 인수린이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아, 아니… 아, 아무 것도 없는 백지인데요?”

“바로 무자경(無字經)이니라.

 서유기의 삼장법사(三藏法師)가 천축에서 처음 얻은 것도 무자경이라 하지 않더냐?

 지고한 법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는 것을.”

“그, 그래도 이건 좀…….”

“그 책은 네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만큼 먹었는지,

 어떤 운동을 언제 얼마 동안 했는지, 

 어떤   약을  언제 몇 알을 먹었는지 등을

 빠짐없이 적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릇된 습관을 고친다면

 당뇨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 생활을 기록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 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울 것인 즉

 노래를 한 곡 가르쳐 주마. 힘에 부칠 때 이 노래를 부른다면 신명이 날 것이다.

 노래의 원제목은 극당위강지곡(剋糖爲康之曲)인데,

 보통 당뇨인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의

 ‘당인요자강(糖人要自强)’이라고도 불린다. 

내가 한 번 불러줄 터인 즉 잘 듣고 외우도록 해라.”

 

인생백세장우장(人生百歲長又長)   인생 백 세 길고도 길지만 

병약평생신고야(病弱平生辛苦也)   평생 병약하면 고생스러울 뿐.

백평광옥무소용(百坪廣屋無所用)   백 평 큰 집 소용없네.

반평아신재환중(半坪我身在患中)   반 평 내 몸은 진흙탕에 있으니.

 

질병기인악습관(疾病起因惡習慣)   질병은 나쁜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

금주금연행운동(禁酒禁煙行運動)   술 담배 끊고 운동을 하세.

건강월시재신중(健康钥匙在身中)   건강의 열쇠는 내 몸 속에 있으니

수신파나세아존(修身婆拿洗我尊)   스스로를 닦아 사바에 잡힌 나를 씻고

                                                         존귀한 나를 만드세.  

 

힘내라! 당뇨인~ ♥♥♥ 加油 ! 糖尿人♥♥♥ Let's GO ! Diab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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