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편] 第七章 생사투(生死鬪) 之 독대독(毒對毒), 신공대전(神功對戰)

독대독(毒對毒)

 

두 번째 비무는 무척이나 특별했다. 무공이 아닌 독을 겨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림맹 측에서는 당가의 장로 당유용(唐有用)이 출전했고, 의리맹에서는 독왕 포이준이 나섰다. 

“선배와 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독인(毒人)으로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당유용이 예를 갖췄다. 그도 그럴 것이 포이준은 비록 적이기는 하나 전대고수이자 당유용의 숙부인 당당해도 존대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흥! 그래도 아직 당가에 인물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로구나. 듣자니 네 형제들 모두가 당에 중독되어 운신하기 힘들다던데?”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독인은 오히려 독에 중독되기 쉽다. 하지만 실험을 하다가 잘못된 것이라면 몰라도 식탐(食貪)을 이기지 못해 그리 되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야.”

“그 말씀, 각골난망(刻骨難忘)하겠습니다.”

“좋다. 내 오늘 너를 어여삐 여겨 강호지례(江湖之禮)에 준해 비무를 하도록 하마.”

“강호지례라 하심은?”

“네게 세 번의 기회를 먼저 주겠단 말이다.”

“에엣-?”

당유용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호행(江湖行)을 하다 보면 부득이 선후배끼리 또는 누가 보더라도 실력 차이가 나는 고수와 하수끼리 겨뤄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선배가 후배에게 세 수를 양보하고, 또한 선공을 양보 받은 후배는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않고 그저 허공에 칼을 세 차례 뿌려 상대의 배려에 답하는 것이 통상적이 예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독을 사용한 비무란 독을 바른 암기를 던지거나 아니면 서로 한 차례씩 상대가 만든 독을 복용하고 해독함으로써 우열을 가리는 형태인데, 포이준이 선공을 그것도 세 번씩이나 양보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인 때문이었다. 

“서, 선배님… 그, 그리 하셔도……?”

“내가 만든 약을 먹으면 너는 당장 죽을 텐데?”

포이준의 말을 듣자 당유용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하긴 괜히 독왕이란 호칭이 붙었을까. 

만약 자신이 후공이라면 꼼짝없이 상대가 주는 약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죽는다면 다음 기회는 없으리라. 그러나 당문 역시 독으로 강호에 우뚝 선 패자(覇者).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터지만 독왕은 흔쾌히 선공을 양보했다.   

독왕의 깊은 배려에 당유용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곤 채비를 시작했다.

당유용은 곁에 놓인 함에서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라 잔을 건넸고, 포이준은 그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당유용이 건넨 차 속에 든 것은 군자산(君子散)이었다. 무색무취(無色無臭)의 군자산은 일반인이 복용하면 아무런 해가 없지만, 무공을 익힌 사람의 공력을 흩뜨리는 산공독(散功毒)이었다.  

일단 군자산으로 공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가벼운 독이라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제법 머리를 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철관음(鐵觀音)에 군자산을 탔구나. 차 맛이 제법 좋은걸.”

독왕은 빈 잔을 허공에 던졌다. 잔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느린 속도로 날아 당유용의 곁에 놓인 주전자 옆에 정확히 내려앉았다. 

물체를 빠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몇 배의 공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독왕은 군자산을 탄 차를 마시고도 변함없이 공력을 운용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준비했느냐?”

포이준의 말을 들은 당유용은 품에서 흰 약병을 꺼내더니 속에서 유지에 싼 환약을 꺼내 공손히 건넸고, 독왕은 유지를 벗기고는 그대로 약을 삼켰다. 

“학정홍(鶴頂紅)이로구나.”

포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든 유지를 삼매진화(三昧眞火)로 태워버렸다. 여전히 공력이 건재함을 보인 것이다. 

당유용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는 녹피로 만든 수투(手套)를 손에 끼었다. 이번에 사용하려는 독은 워낙 강하기에 잘못 만지면 자신도 중독될까봐 조심하는 것이었다. 

“당가 칠대극독의 하나입니다. 저만이 조제법을 알고 있지요.”

그는 작은 옥병을 건넸고, 포이준은 역시 거침없이 병뚜껑을 열고는 약을 들이켰다.  

잠시 후, 포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척 쓰구나. 아마도 칠보단장산(七步斷腸散)일 듯싶은데…….” 

당유용은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못했고, 포이준은 몸을 돌리고는 느린 걸음으로 비무대를 내려갔다. 

손영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독왕은 일방적으로 방어만 했을 뿐 공격을 하지 않았고, 더구나 아무런 말도 없이 비무대를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유용이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 내가 졌소.”

“왜 그렇지요?”

“칠보단장산은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모든 장기가 녹아내린다는 극독이오. 헌데 포 선배는 그걸 드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서 비무대를 내려가셨소. 설령 여덟 걸음을 걷고 나서 숨졌다 해도 내가 패한 것이거늘…….”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손영태가 소리쳤다.

“독왕 포이준 승-!”

 

비무대를 내려온 독왕에게 의왕과 투왕이 물었다. 

“자네 정말 괜찮은가?”

“제법 세던걸. 아마 며칠 동안 속이 불편하겠지. 그래도 견딜 만해.”

“학정홍에 칠보단장산까지 먹고도 끄덕없다니… 정말 괴물이로구만.”

“맞아, 괴물이 되었지. 워낙 이런저런 독을 많이 먹었으니 정상일 리 없잖아. 아마도 내 피는 세상에서 가장 심한 독일 걸. 헌데 산공독이 든 차도 마시고 학정홍을 먹고 나니 불현듯 다산(茶山)의 정약용(丁若鏞) ‘탐진촌요(耽津村謠)’라는 시가 떠오르는군  그래.”   

 

산다접엽령동동(山茶接葉泠童童) 설리화개학정홍(雪裏花開鶴頂紅)        

일자갑인염우후(一自甲寅鹽雨後) 주란황유진고총(朱欒黃柚盡枯叢)

 

동백나무 잎은 얼어도 무성하고 눈 속의 꽃은 학 정수리처럼 붉어라.

갑인년 어느 날 소금비가 내린 후, 붉은 모감주나무 누런 유자나무 모두 말라 없어졌네.

 

 

 

신공대전(神功對戰)

 

“이번에는 당가의 소공자 당굉과 북해 한빙궁의 소궁주 나빙수의 비무가 있겠습니다. 소공자 대 소궁주! 준이아(俊以兒, junior)끼리의 대결이로군요.”

손영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굉은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고, 그의 얼굴이 점차 여린 금색을 띠어 갔다. 

두두둑-!

그의 상의가 찢어지면서 금빛 상체가 드러났다. 과연 철갑요마(鐵甲妖魔)라는 별호처럼 탄탄하기 그지없는 몸이었다. 

사이보구(似而保龜, cyborg) 신공, 거북이와[龜] 비슷하게[似而] 몸을 보호하여[保] 세상의 어떤 무기도 뚫지 못한다는 기공을 익힌 때문이었다. 

반면에 나빙수는 그저 오른손만을 내민 평범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붉은 안개 같은 기류가 서린 것으로 보아 최대한 공력을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굉이 나빙수에게 다가가려 크게 한 발을 떼었다. 도검도 뚫지 못하는 신체 자체가 무기도 될 수도 있는 만큼 접근전을 펴겠다는 의도였다. 

그가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나빙수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장력을 발출했다. 

펑-!

장력에 격중 당한 당굉의 몸에 하얀 성에가 끼었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린다는 빙궁의 무공 한빙장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당굉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록 몸이 크게 흔들렸지만, 들었던 한 발을 다시 내려놓은 것이다.  

한 쪽은 전진하려 하고 다른 쪽은 그를 저지하려 하는, 보기에는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극강의 호신기공보다는 계속 장력을 발출하는 것이 훨씬 공력 소모가 많은 때문이었다.  

당굉이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비무대 위에 깔린 단단한 청석이 깊이 파이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공력을 십이 성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기합은 물론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오직 장력이 격중되는 소리와 당굉이 육중한 발을 내딛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작할 때 오 장이 넘었던 두 사람의 사이의 거리는 이제 채 한 장이 남지 않았다. 

쿠쿵-!

당굉이 발을 딛자 청석이 또 갈라졌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수 척! 두어 발만 더 전진하면 당굉의 손이 나빙수의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이다. 

위기를 느낀 나빙수의 공격이 더욱 맹렬해졌다. 

퍼펑-!

고막을 찢을 듯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당굉의 몸은 순식간에 하얀 얼음으로 뒤덮였다. 나빙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장력을 발출했다.  

펑-!

당굉의 몸에 살얼음이 서리는가 싶더니, 이어진 한기에 얼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 당굉은 두꺼운 얼음에 갇히고 말았다. 비무대 주위의 사람들은 살을 에는 듯한 한기(寒氣)에 옷깃을 여밀 정도였으니, 나빙수가 발출한 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당굉은 비무대 한가운데서 빙인(氷人)이 된 채 움직이지 못 하고 있었다. 

손영태는 꼼짝하지 못 하는 당굉을 보고, 나빙수의 승리를 선언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둑-!

얼음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며 당굉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사이보구 신공의 위력은 대단했다. 

얼음을 깨고 나온 당굉은 알몸이었다. 얼음에 옷이 달라붙어 찢어진 때문이었다. 그는 기묘한 미소를 지며 다시 한 발 전진했다. 다리 사이의 거대한 양물(陽物)을 드러낸 채로.  

나빙수가 흠칫 놀라며 다시 장력을 발출했다. 

펑-!

놀라운 일이었다. 당굉은 순간적으로 움찔하긴 했지만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다시 전진했고, 한 발 물러선 나빙수는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나빙수가 명백히 손해를 본 일 장이었다. 

“크아악-!”

금빛 알몸을 드러낸 당굉은 마치 야수처럼 포효(咆哮)를 하며 다시 한 발을 내딛었고, 나빙수는 다시 장력을 발출했다. 

하지만 당굉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시 한 발을 전진했다. 

이제 당굉과 나빙수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당굉이 한 발만 더 다가서서 팔을 뻗으면 나빙수를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당굉이 다시 한 발을 들어 올린 순간, 나빙수가 장력을 발휘했다. 이번에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퍽-!

놀랍게도 당굉의 몸에 불꽃이 일었다. 나빙수가 사용한 것은 한빙장과는 극성인  열양장(熱陽掌)이었다. 바위조차 녹여 버린다는 극강의 열기가 순음지체인 나빙수에게서 발현된 것이다. 

자신이 지닌 내력을[裏] 뛰어넘어[透] 갈고[磨] 지키는[守] 리투마수(裏透磨守, litmus) 신공으로 그녀는 본래 익힌 한빙장뿐만 아니라 극강의 열양장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당굉이 다시 발을 드는 순간, 나빙수가 손을 휘둘렀다. 

퍼퍽-!

치익-!

수 차례 한빙장에 격중 당해 차갑게 변한 당굉의 몸에 생긴 서리와 얼음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녹으면서 하얀 김을 뿜어냈다. 

그리고 나빙수는 내력을 지나치게 소모했는지 안색이 창백했고, 입가에서 실낱같은 핏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핼쑥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당굉이 씩 미소를 지으며 오른발을 들었다. 그리고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사람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좌좌좌좌좌좍-!

당굉의 가슴에 작은 균열(龜裂)이 생기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온몸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차르르르륵-!

수백 수천 조각으로 갈라진 당굉의 몸은 파편으로 변해 비무대 위에 우수수 떨어졌다. 

한껏 차가워졌던 몸에 갑작스런 열기가 가해지자, 온도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만 것이었다.   

천하무적 호신공을 익힌 당굉을 출전시켜 배신자인 나빙수를 처단하고 승기(勝機)를 잡으리라 기대했던 당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럴 수가……!”

 

이로써 둘째 날의 비무 역시 의림맹의 전승으로 끝났다. 

진행자인 손영태는 당굉이 부신 비무대의 청석을 새로 깔기 위해 대회를 하루 미룬다고 공지했다.  

비무대를 수리하는 날, 장왕은 투왕과 어디론가 가서 종일을 보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