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편] 第六章 등촉시위(燈爥示威) 之 기업합병(企業合竝), 쾌속오독(快速五毒)

기업합병(企業合竝)

 

“사 장로! 어찌 하면 좋겠소.”

무림맹주 철각개가 수석장로이자 고문격인 사불후에게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돌린 사불후에게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미간을 지나 코까지를 덮는 특이한 문사건을 벗은 것이었다. 

그의 콧날은 수려하게 뻗어 있었다. 투왕 표돌의 말대로라면 콧등이 주저앉아 있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검왕 사부루와 무림맹의 사불후는 동일인이 아니란 말인가?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지 않소? 대세의 흐름에 따르는 수밖에.”

그는 왼손을 들어 자신의 콧등을 슬쩍 문질렀다. 그리고 남몰래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무당의 보성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비록 우리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규모의 맹을 운영하자면 경비가 한두 푼 소요되는 게 아니외다. 더구나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유통인 바, 그 점을 당가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이었다. 극감독환의 발명으로 무림맹의 자금 사정은 좋아지는 듯했다. 극감독환을 고가(高價)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맹 창설에 기여한 각파의 장문이나 장로들에게까지 그만한 가격을 받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마구 조직을 만들고 규모를 확장한 터라 소요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인 조직이었기에 상업 특히 유통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때 당가가 은밀한 제의를 해 온 것이다. 극감독환의 판매와 유통을 맡을 테니 이문의 삼 할을 달라는 조건으로.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었다. 만성독인 당으로 수많은 환자를 만들어낸 주범 당가가 그 치료제 판매를 맡고 나섰으니.  

극감독환의 발명자로서 약이 한 알 판매될 때마다 힘쓰고[勞] 열정[熱]을 던졌기에[投] 얻는 이득[利]인 노열투이(勞熱投利, royalty)를 받는 보성자는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어차피 약이 팔리면 팔릴수록 자신에게 돌아올 혜택은 많아질 것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당요가 무림맹에 이 같은 제의를 하게 된 것은 사갈인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정랑! 나빙수의 실종으로 빙기림 매출이 엄청나게 떨어졌어요. 배 장로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공력 차이 때문인지 품질이 전만 못하다는 평이에요. 이대로 가다가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어요.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어요?” 

“요아(姚兒)! 품목을 한 가지 늘리면 어떻겠소?”

“새로운 품목이요? 그게 무엇인가요?”

“무림맹이 만든 극감독환이오.”

“무림맹이라면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잖아요. 더구나 극감독환이라면 우리가 파는 품목과는 상극인데… 어찌 그런 말을?” 

토라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당요를 사갈인이 달랬다.

“당독(糖毒)은 만성독이고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오. 극감독환을 먹는다 한 들 완치되는 것이 아니고 증상이 완화될 뿐이오. 그러면 건강을 되찾았다고 여긴 사람들은 다시 초골력이나 빙기림, 환병을 찾을 것 아니겠소? 

물론 일시적으로는 매출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부족분은 극감독환을 팔아 채우면 될 것이고, 결국 우리가 유통을 장악할 테니 장기적으로는 사업을 더욱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오. 게다가 무림맹이라는 그럴 듯한 바람막이가 있으니 얼마나 좋소?”  

“일종의 기업합병(企業合倂, M&A)이로군요.”

“당맹합병(唐盟合倂)이라 해야겠지.”

“당신은 천재예요. 나의 수우상(獸偶像: 짐승돌)!”

“마이(魔而, my) 판무파탈(判無破奪, femme fatale)-!”

註 - 악마(魔)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판단력[判]을 없애[無] 남자를 깨뜨리고[破] 모든 것을 빼앗는[奪] 여인. 

 

한 차례 질펀한 정사를 마치고 가뿐한 표정으로 방을 나서던 사갈인이 몸을 돌려 당요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참! 지난번에 당신이 아버님께 드린 선물 있잖소?” 

“규소수지(硅素樹脂, silicon) 말씀인가요?”

“그렇소. 아주 효과가 좋았다며 이것을 주셨소. 당신께 주라시면서.”

사갈인이 작은 옥병(玉甁)을 건넸다. 

세상에 선물을 받고 기뻐하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당요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 이게 뭐예요?”

“피부의 도타움[篤]을 보호[保]하는 물[水]이오. 보독수(保篤水, botox)라고 하지. 약을 바늘에 조금 묻혀 주름이 생긴 피부에 주입하면 몰라보게 좋아질 것이오.”

“정랑! 고마워요.”

 

 

 

쾌속오독(快速五毒)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신강기(護身剛氣)를 운용하면 비를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인수린은 지우산을 하나 사서 썼다. 괜스레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바른못[平澤]에 이른 인수린 일행은 열흘 후 다시 수이(首爾)에서 만나기로 하고 잠시 두 무리로 나뉘었다. 

독왕 포이준은 절친한 벗을 만나기 위해 편한뫼[安山]에 들르기로 했고, 인수린은 어진미르[龍仁]의 숙부를 찾아뵈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의형제들에게 두 스승의 호위를 부탁하고, 단신으로 어진미르로 향했다.   

 

어진미르 초입, 길을 지나던 인수린은 맞은편에서 우산을 든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십여 장이 넘는 거리였지만 우산 속 여인의 얼굴을 본 인수린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 어머니-!”

그 소리에 우산 속의 여인은 고개를 들고 인수린과 눈을 마주쳤다. 중년에 이르렀지만 무척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동공(瞳孔)이 점차 확대되었다. 

인수린이 다가가려는 찰나,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일단(一團)의 무리가 몸을 날려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인수린과 묶은풀[束草]에서 손을 섞었던 검은 피풍의의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은 당가가 무림맹의 인물과 부딪치거나 또는 회유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당요가 직접 키운 쾌속오독(快速五毒)이었다.

함박아(咸博亞, Hamburger), 피자(皮雌, Pizza), 나면(羅免, Ramen), 소시지(蘇施志, Sausage), 하도구(河道久, Hotdog) 등 다섯 여인은 모두가 홍기(紅妓) 출신으로 무림맹 무공의 파해법과 색(色)으로 사내를 홀리는 미혼공(迷魂功)의 일종인 색시공부(色示功夫, sexy kungfu)을 익히고 있었다.   

여인들은 중년미부가 말릴 틈도 없이 칼을 빼어 들고는 인수린을 에워쌌다. 

그러나 인수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대들과 용무가 없다. 단지 저 분께 몇 마디 여쭤 볼 말이 있을 뿐.”

“헛소리마라-! 네 녀석이 빼돌린 한빙궁 소궁주는 어디 있느냐?”

일행의 맏이인 함박아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물었다.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정녕 뜨거운 맛을 보아야 하겠다는 말이지? 얘들아, 쳐라-!”

인수린은 하는 수 없이 갈무리했던 금척을 꺼내 들고 그녀들과 맞섰다. 왼손에는 여전히 우산을 든 채였다. 

채채챙-!

인수린의 금척이 여인들의 칼을 번갈아가며 부딪치자 모두가 두어 발씩 물러났다. 한 차례의 격돌로 공력의 고하가 드러난 것이다. 

여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삼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진된 인수린의 공력에 놀란 것이었다. 

“흥-! 제법 한 수가 있었구나.”

가장 가까이 있던 피자가 공격을 해왔고, 인수린은 무림맹의 백호도법의 초식을 이용하여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과연 예상한 대로였다. 피자는 인수린이 펼친 백호박토(白虎博兎)의 초식을 여유 있게 막아내고는 역습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인수린이 돌연 초식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몸에 익은 대로 초식의 변화에 앞선 동작을 취했던 피자는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게 되었고, 인수린은 그녀의 엉덩이를 툭 걷어찼다. 

“어맛-!”

이어 인수린은 소시지에게 백호휘조(白虎揮爪)의 초식을 펼쳤고, 그녀 역시 파해법으로 맞섰다. 그러나 인수린은 초식을 중도에서 거두는 예의 방법으로 소시지를 무력하게 만들고는 그녀의 옆구리에 가벼운 일격을 가해 물러서도록 했다.

나머지 함박아, 라면, 하도구도 마찬가지였다. 인수린은 역(逆)의 역을 이용한 수법으로 상대 모두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다. 수투립진(守投立陣, strip formation)을-!” 

함박아의 말에 여인들은 모두가 물러서더니 피풍의를 비롯해 몸에 걸치고 있던 모든 옷을 벗어 눈부신 알몸을 드러냈다. 

지켜야[守] 할 것마저 던져[投] 버리고 서는[立] 수투립(守投立, strip) 진법. 색시공부 절정의 수법이었다.  

수밀도(水蜜桃) 같은 육봉(肉峰)이 출렁였고, 탐스런 둔부(臀部)와 거뭇한 비소(秘所)까지 드러낸 채 빗속에 선 다섯 여인은 기괴하면서도 강한 색기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중년미부는 같은 여자로서 그러한 광경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색시자세(色示姿勢, sexy pose)-!”

함박아의 말이 떨어지자 여인들은 저마다 야릇한 자세를 취했다. 가슴을 요란하게 흔드는가 하면 몸을 돌려 둔부를 보이거나 일부러 다리를 들어 비부(秘部)가 드러나도록 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아찔한 광경이었다. 웬만한 사내라면 홀린 듯 다가가 가까이 있는 누구라도 끌어안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수린은 우산을 받쳐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색시무용(色示舞踊, sexy dance)-!”

여인들은 인수린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인수린이 축(軸)이고, 자신들은 바퀴가 된 양.

같은 자세라도 정(靜)과 동(動)의 차이는 크다. 그래서 동영상(動映像)이 더욱 자극적이라 하지 않던가. 더구나 거친 들판[野]을 무대로 했다면 더더욱 자극적이어서 야동(野動)이라는 말까지 생긴 것이다.  

여인들이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부위가 달라졌고, 그 느낌은 아까보다 몇 배 더한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인수린은 여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제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색시음악(色示音樂, sexy music)-!”

여인들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끈적한 교성(嬌聲)을 뱉어냈다. 인수린 역시 그에 맞춰 다시 반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아흥~!”

“하아아~!”

수십 년의 수도(修道)를 한 고승조차 견디질 못할 정도로 강한 욕정을 유발하는 극성의 음공(音功)이었다. 

“올가주무(兀可炷茂, orgasme)-!”   

여인들의 야릇한 움직임과 교성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아흐~ 아흐흑~!”

“흐흥~ 흐흐흥~!”

맹렬한 속도로 인수린 주위를 맴돌던 여인들이 갑자기 돌기를 멈추자 인수린도 멈춰 섰다. 그는 눈을 감은 채였다.  

함박아의 눈짓에 따라 다섯 여인이 동시에 인수린을 겨누고 찔러 들어왔다.   

채챙채채챙-!

퍼퍼퍼퍼퍽-!

다섯 번의 쇳소리와 다섯 번의 둔탁한 음향에 이어 여인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흑-!”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은 인수린뿐. 다섯 여인은 모두 그의 발치에 쓰러진 채 모두가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링걸한수도에서 색관(色關)을 돌파한 인수린에게 색시공부 따위의 저급한 무공은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이다. 

“목숨을 취해야 마땅하나 공력만 폐했다. 모두 단전을 파(破)하여 사내의 정기(精氣)를 빼앗는 사공(邪功)을 다시는 쓰지 못하게끔 했으니… 남은 삶을 바르게 살아  죄를 씻도록 하라.”  

힘겹게 몸을 일으킨 여인들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사라지자 인수린이 중년미부에게로 다가갔다. 

너무도 놀라운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중년미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인수린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청년이……?”

“제 어머니가 모용 성에 혜(蕙) 자를 쓰십니다.”

“그, 그랬구나. 내 동생을 쏙 빼닯았어. 내가 네 이모 모용란(慕容蘭)이다.” 

근 삼십여 년 만에 만난 이모와 조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모용란이 인수린과 만나게 된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할 수 있지만, 또한 당가의 가주이자 그녀의 남편인 당과용 덕분이기도 했다.   

당과용은 당에 중독되어 거의 페인이 되었고 실권(實權)마저 잃었지만, 그에게는 한 가닥 무인의 정신이 남아 있었다. 

당요의 패악으로 강호가 아수라장이 되고 당가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안 그는 삼십 년 가까이 별거했지만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부인인 모용란에게 은밀한 유언을 남겼다. 모용란의 친정인 모용세가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여 강호를 구하라는.  

당요가 아무리 가주 대행이라지만 가모(家母)인 모용란의 외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원행(遠行)하는 그녀를 호위한다는 구실로 쾌속오독을 따르게 하여 감시를 하도록 했다.   

모용란은 이러한 당요의 속셈을 눈치 채고 부러 이리저리 길을 돌며 도주의 기회를 엿보던 중 인수린을 만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요가 내 동생과 제부(弟夫)까지 살해했단 말이냐? 그리고 마을사람들까지도……?”

“네. 아버지께서 남기신 임사전언이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틀림없으리라 여겨집니다.”

“혜아가 결혼할 때 모든 식구가 반대했지만 나만은 찬성했다. 나야 장녀인 만큼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여자의 행복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밤에 도망치도록 돕기도 했는데… 그토록 허무하게 가다니…….”

“이모님! 염려마십시오. 반드시 제 손으로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런데 너는 이곳에 어인 일이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숙부님과 함께 이리로 피했습니다. 그 후 저는 무림맹으로 떠났고… 여러 가지 일을 겪느라 찾아뵙지 못했지요.”

“사돈도령께서 이곳에 계시다고? 그렇다면 어서 가서 만나보자꾸나.”

 

인투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는 저자거리에서 도장을 파주거나 월시복제(钥匙複製: 열쇠 복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 수린이 아니냐? 네, 네가 어떻게 여길……?”

“숙부님!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숙부를 만난 인수린은 모용란을 소개한 뒤,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력분타에서 지내다가 누명을 쓰고 도망친 후 흑면사걸과 함께 당가의 표행을 공격한 것이며, 랑걸항수도에서 무예를 닦은 일 등… 인투내와 모용란은 그의 이야기에 때론 기뻐하고 때론 놀라며 밤을 지새웠다.